비평

「순환하는 삶과 지속가능성에 대한 이야기」, 오정은

순환하는 삶과 지속가능성에 대한 이야기

 

신용진 《563》: 순환하는 삶과 지속가능성에 대한 이야기

순환하는 삶과 지속가능성에 대한 이야기 오정은(미술비평) 이것은 삶에 대한 이야기다. 살아감에 대한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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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정은(미술비평)

 

 

이것은 삶에 대한 이야기다살아감에 대한 어느 한 사람의 자조 섞인 비화그 사람이 말하는 삶의 지난한 것들이 동시대 우리 생의 양상과 그리 겉돌지 않는다는 데서나는 그 내밀한 이야기가 좀 더 넓게 확산되어도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이야기의 발화자는 신용진 작가(b.1991)그는 자신의 개인전 《563(온드림소사이어티, 2023)에 두 개의 자아를 내보인다환경미화원으로 입사해 일했던 지난 1년 동안의 자아그리고 현대미술 작가로서 보낸 수년간의 자아가 그것이다노동과 예술자기 삶에 드리워 체화된 그들 각 분야에서 작가는 양자를 잇는 가교를 몇 개의 활자 언어와 오브제사진 등으로 발표했다이를테면 몸이 뒤틀려 부분적으로 신체의 앞뒤가 반전된 마네킹에 미화원 복장을 착장 시킨 <양방의 군상>(2022)은 작가가 경험한 두 개의 자아와 그 페르소나가 바라본 복수의 세상을 의미한다하나의 몸에 하이브리드된 양방의 군상은 2022년 개인전 《저편의 양》(공간운솔, 2022)에서 먼저 공개된 작업인데당시 전시의 제목에서도 드러나듯 신용진은 이편과 저편’, ‘과 과 같은 양극의 것을 사람들에게 전달하려 하고 있다.

 

전년도 전시 제목과 동명의 작업이자미화원 장갑을 도구로써 황마족자에 벌건 추상무늬 도장을 찍은 평면화도 있다이는 언뜻 표현주의 회화의 형식을 띠고 벽면에 걸려있지만노동자의 손에서 작가의 손으로 이관된 행위 과정의 흔적으로 보는 게 더 적합하다작가는 일주일에 해당하는 중 6요일의 시간과 그들 순환을 뜻한 <소각의 하루>(2022)연작도 발표한다동이 채 떠오르기도 전 매일의 새벽미화원 신용진은 골목 곳곳에 놓인 쓰레기봉투를 리어카와 특장차에 싣고 날라 마포쓰레기 소각장까지 옮기는 일을 해왔다그때의 흔적이 녹아든 여섯 점의 작업은 현재 한 두 개의 단순 재료로 이루어져 담백한 외양을 하고 있지만보이는 물성만으로는 알 수 없는 과거의 고해를 무겁게 배양한 것이기도 하다이 작업은 《저편의 양》에서 ·····의 각 훈음에 해당하는 ‘달···나무··해에 부응하는 재료 사용으로 하여금 전시의 상징 기표를 더하면서 전시됐던 바 있는데563》에서도 다시금 독해의 기회를 맞는다

 

 

생겨난 것은 소멸되고 없어진다

매일 감각하는 오늘의 하루조차 그렇게 소비되고 있다

지속될 것만 같은 현재의 순간도 시간이 지나고 나면 소각의 운명을 맞이할 것이다.”

-신용진 작가노트, 2022-

 

 

신용진의 일곱 번째 개인전 제목 ‘563(오육삼)’은 365일의 1년 주기를 뒤에서 읽은 숫자로작가의 전작에서 이어져온 주제-존재의 순환-를 의미한다그는 신작 <오륙삼의 양 x 24>(2023)를 통해 24절기 계절에 대한 두 숫자를 디지털 레이어로 포갠 뒤 다시 아날로그의 획으로 표기한 기호학적 아이디어도 선보인다이들 작업은 원의 방향 운동성을 ‘=’의 구성을 띠고 진열된다한편이번 전시가 서울 명동 번화가에 위치한 온드림소사이어티 내 커뮤니티 스페이스에서 개최된다는 점은 신용진이 그간 수행해온 개념미술 작업에 새로운 레이어를 추가하는 요소가 되기도 했다매일 우리 일상에 무방비로 노출되는 소비사회의 스펙터클 뒤편으로 쉼 없이 쏟아지고 있는 거대 폐기물과 그것이 한 데 집결된 소각장을 목도했던 작가에게 이 전시장의 미감은 전과 극단적인 대비를 이루기 때문이다카페 식음 공간과 병행 운영되어 여느 다른 전시장보다 더 많은 유동인구가 있는 공간 특성상기피시설인 소각장의 일화가 담긴 작업의 특정적 배치는 현실에 사뭇 긴장감을 연출해낸다그러나 이 불안한 관계 형성과 균열 감각이야말로 작가가 의도한 내용과 적잖이 공명하는 것이었다

 

<미대칭변초경>(2021)은 시선의 각에 따라 이미지가 변화하고 입체감이 드러나는 렌티큘러(lenticular) 작업이다중심에서부터 대칭을 이루는 정방형의 사진 연작으로 각각 어떤 컬러풀한 대상을 기록한 것 같이 보인다수학적이고 종교적인 패턴 이미지를 연상할 수도 있는데각 개인의 투사 기질에 따른 연상 작용일 뿐 확증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현란한 무늬와 착시효과로 경우에 따라 미약한 최면에 걸리거나 약간의 시각적 어지러움을 동반할 수도 있다사실 이들은 작가가 선탑자로 동행해 갔던 재활용 분류장의 풍경을 틈틈이 촬영한 사진을 원본 소스로 활용한 사진이다. 1차 사진으로 찍힌 각종 쓰레기의 압축 덩어리는 본래 사회의 골치 대상이자 미감을 잃은 것이지만 이를 전유 2차적 풍경 이미지로 이용한 <미대칭변초경>은 시각적 규칙과 미학적 원리에 따라 관람자에게 감상의 대상으로 소비된다작가는 시각적 위치에 따라 수시로 변하는 렌티큘러의 상을 오늘날 우리가 속한 환경의 변주와 인간의 불완전한 인식에 빗대었다.

 

와 를 오고 가는 이들 전시 작품에 이어 <원 자른다또는 기레쓰>(2023)는 다시금 생각의 반전을 유도한다사진 속에는 부조리극의 대사처럼 모호한 문장, ‘원 자른다또는 기레쓰가 써진 손글씨와 나뭇잎 모양 하나가 보이고관람객은 이 문자가 어떤 바를 표하는지 한참을 고민할 수밖에 없다관람객이 이번 전시 및 다른 작품 명제 작명 원리에 착안해 마치 암호문을 해독하듯 의미를 풀었다면 쓰레기는 또 다른 자원이라는 문장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주제 공모로 이루어진 본 전시의 미션이자 배경, ‘지속가능한 미래를 의식한 신용진 작가의 직설적인 메시지다이 문구는 말 그대로오늘날 우리 사회가 의식하고 공감하는 환경오염과 생태계 보전의 이슈를 상기시킨다다른 측면으로는 신용진 작가가 서명처럼 남긴 자기 삶의 읊음인데순수미술 작가가 살아가는 대개의 모습이 전업에 부업을 겸하거나 문화재단 주최 공모전에 지원하는 것이기에 그 같은 독백은 현실적 여운을 줄 만하다.

 

563》에는 신용진 작가의 자화상도 전시되고 있다주제와 의도를 숨기고뒤틀기 좋아하는 작가이기에 자신의 자화상도 역시 한 번에 분명하게 보여주는 것은 아니다렌티큘러 작업 <습기의 자화상>(2022)은 어둠으로 채워진 골목 풍경과 작가의 정면 포트레이트가 시선 방향에 따라 각기 보였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하며 대꾸를 이룬다사진 속 작가는 미화원 복장을 하고 안전모를 쓰고 있다흔히 말하는 셀카로 자기 얼굴을 기록했다노동자이자 그 자아를 작품의 자원으로 쓴 작가의 의도가 환영 같은 형상으로 겹쳐 보인다미화원으로서의 자기 자신을 찍은 그 모습은 미화된 것일까?

 

그런 한편 작가의 셀카 속 안전모는 습기옥이라 이름 붙은 실제 사물로 전시장 내 진열되고 있다안전모 끝에 풀을 붙여 고드름 같은 장식을 더한 <습기옥>(2022)은 사진 속 성에 낀 안전모를 작가가 재현한 것이다새벽녘 미화 일을 하다 보면 한기에 마스크 속 입김이 안전모 끝에 닿아 고드름 같은 성에를 만들어냈다고 작가가 말했다실제 노동의 증좌가 전시에서는 인공의 사물로 재현됐다사진과 입체 오브제원본으로부터 복제된 예술품생산과 소비가 교환되는 각각의 현장그 속에서 거푸 일어나는 어떤 등장과 소멸이다뒤틀린 마네킹의 방향처럼 서로의 구분을 모호하게 하고 그 상태가 공유되는 무엇이 보인다마치 끊임없이 자리를 바꿔 계속되는 역할극 같다신용진은 자기 삶의 형언과 예증을 통해 그 가능태를 이야기하는 중이리라그가 말하는 순환과 지속성의 이야기가 오늘날 사회가 갈구하는 답안만큼 명료하다고 볼 수는 없지만어쩌면 그렇기 때문에 더 논할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닐까.

 

 

무엇을 감각하고 느끼는 볕의 이야기가 잠들면 그늘의 이야기가 깨어난다

어둠의 흔적은 때때로 예술의 환영보다 오히려 

일상을 거짓 시각화하고 있는 기이한 마법처럼 보이기도 한다.”

-신용진 작가노트, 2022-

 

 

 

※ 기관 사정으로 디스플레이 연출이 바뀌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