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흡의 존재론
– 신용진 개인전 《공기색 입자》 리뷰 –
이문석(독립기획)
먼지를 개어 음양오행과 양자역학을 도식화했다는 작품에 대한 소개를 듣는다면, 우리는 그 작품 앞에서 입으로 ‘후’하며 불고 싶어질지도 모른다. 앎을 먼지로 쌓아 올린 구조물이라면 응당 위태로우리라 생각하면서, 우리는 그것을 기만이나 허풍에 지나지 않는 것처럼 바라본다. 그러나 다음에 소개할 작품들은 웬일인지 그러한 기대에 부응하지 않고, 입바람에도 쉽사리 날아가 버리지 않는다. 무엇이 작품들을 지탱하고 있는 것일까.
신용진의 개인전 《공기색 입자》가 열리고 있는 전시공간 ‘10의 n승’에 들어서면, 세 벽면에 러더퍼드 원자 모형(Rutherford model), 태극, 오행을 각각 도식화한 〈공기색 입자〉, 〈N 개의 질료, 또는 물질〉, 〈원형의 양각〉 시리즈가 관객을 맞이한다. 작가는 현대 물리학과 동양적 세계관에 적잖은 관심이 있고, 사람 키만 한 세 작품은 그러한 관심을 담보로 벽면에 걸려 있다. 특정한 자연관이나 우주관에 대한 창작자의 관심이 작품을 통해 도상화 되는 일을 우리는 전시장 안에서 어렵지 않게 바라볼 수 있지만, 그 경우 작품들은 탁월한 미적 표현력을 바탕으로 관객들에게 작가의 관심을 전이시키거나, 정교한 논리적 이해를 바탕으로 관객들에게 작가의 이해를 추체험하게 한다.
그러나 신용진의 작품이 이 두 가지를 충족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원자 모형과 음양오행의 도식에서 심미적인 무언가를 발견하기엔 그 형태가 우리가 한 번쯤 보았을 도상의 모습 그대로이다. 두 세계관의 이론적 토대 역시 아주 단단하지는 않은데, 작가는 최신 물리학 안에서 러더퍼드 원자 모형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이 모형을 그대로 채택하였고, 음양오행에 대해서는 오행의 다섯 글자(火水木金土)를 하나로 합친다는 등, 작가의 피상적인 이해를 바탕으로 한 해석이 많다. 우리가 현대의 물리학과 고대의 세계관을 만나보겠다고 이 작품을 마주한다면 그 기대는 아마도 반드시 꺾일 것이다. 우리가 걸어야 할 기대는 삼라만상의 도식이 아니라 삼라만상을 표현하기 위해 동원된 아주 작은 티끌에서 찾아야 한다.
신용진은 작고한 화가 박서보의 스튜디오에서 배출된 쓰레기봉투 속 먼지를 가지고 작품을 제작했다. 신용진은 이 원로 작가의 대표작인 ‘묘법’(描法) 시리즈 프로덕션에 참여하면서, 작품의 표면에 요철을 만들 때 발생하는 부산물들을 버리지 않고 가지고 갔다. 신용진은 ‘10의 n승’의 한 켠에 이때 모아둔 쓰레기 한 더미를 〈법묘 혹은 탈묘법〉이라는 이름의 작업으로 배치해 두었다. 신용진은 이 더미를 채로 쳐서 상대적으로 고운 입자들만 모은 뒤, 이로 반죽을 만들었다. 신용진은 이 반죽을 가지고 자신이 박서보의 스튜디오에서 배운 〈묘법〉 시리즈의 제작 방식을 가미하여 작품을 제작한다. 신용진은 자신이 일했던 스튜디오의 원로 작가의 죽음 이후 느낀 미묘한 심리적 가까움을 상기하며, 그의 부산물을 가지고 다른 작품으로 재활용하고, 그것을 자신이 관심을 가지는 존재론의 물적 기반으로 만들었다. 비록 존재론의 이론적 토대는 헐겁지만, 앞선 모든 문장의 주어가 신용진인 것처럼, 작품을 설명하는 모든 주어는 작가 자신의 노동에 빚지고 있다. 이것이 우리가 다소 맹랑한 삼라만상 자체가 아니라 그것이 티끌과 맺는 가늘고 질긴 관계에 기대를 가질 수 있는 이유다.
만약 우리가 전시 《공기색 입자》를 이해하기 위해, 작가가 작품을 설명할 때 동원한 거대한 세계관들에 눈을 돌린다면, 그 이론에 대한 이해의 헐거움과 그 이론이 작품의 표면과 맺는 관계의 소원함 때문에 고개를 갸우뚱하게 될지도 모른다. 또 신용진의 작업을 이해하기 위해, 그가 관계 맺었던 한 원로 작가의 이름을 자꾸 호명하는 것 역시 이 작품의 기원을 이해하기 위해 언급한 인물이 그 작품의 인상을 잠식하게 될 수도 있기에 지양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오히려 앞선 세 점의 작품을 이해하기 위해 쓰레기 더미 오른편에 설치된 한 점의 작품에 눈을 돌리는 편이 나을지도 모른다. 직경 30cm의 원형 캔버스에 제작된 〈원형의 음각〉은 이 작품이 마주 보고 있는 다른 ‘원형의 음각’ 시리즈들과 다르게 오행의 글자가 적혀 있지 않고 그저 ‘묘법’ 방식으로 제작된 ‘묘법 먼지’의 요철만 보여준다. 이 작품은 앞선 대형 작품들보다 작고 또 무채색이다. 조촐한 크기와 색감 때문인지, 왠지 모르게 이 작품은 공기청정기에 쓰이는 먼지 필터처럼 보인다. 좀 더 신용진과 엮어서 바라본다면, 그가 스튜디오에서 일했을 때 먼지를 피하고자 썼던 방진 마스크를 떠올리게 만든다. 이 작품이 중요한 이유는, 신용진이 한 원로 작가로부터 주고받았던 물리적, 정서적, 환경적 영향들이 걸러지는 면적을 연상시키기 때문이다. 작가는 오랫동안 노동자로서의 정체성과 창작자로서의 정체성 양자를 오갔다. 자신의 정체성이 오가는 과정에서 작가는 숨을 쉬고 또 숨을 뱉어낸다. 실제로 신용진은 스튜디오에서 프로덕션 작업에 참여하며 그러했다.
이번 전시는 이러한 자기 경험의 과정에서 자신의 두 가지 모습 사이에 호흡이 오가며 걸러진 입자에 대한 것이 아니었을지 짐작해 본다. 분리되지 않는 자신의 두 가지 정체성의 정체에 대하여 스스로 고민하다가, 자신이 일하게 된 한 스튜디오에서의 구체적 경험을 통해 발견한 입자들이 이번 전시장에 진열되어 있다.
어떤 사람이 어떤 세계의 존재론을 인식하는 길은 그것의 추상적 이론에 막연하게 희열을 느낀다고 구해질 리 만무하고, 오히려 자신의 구체적인 경험들과 맞붙는 과정에서 느껴지는 미세한 이물감들을 통해 체험할 수 있을 것이다. 오행이건 4원소설이건 양자역학이건 암흑물질이건, 신용진의 작업에 드러난 존재론의 구조물이 조금 허장성세같이 보일지언정 쉽게 날아가 버리지 않는 것은 그가 자기 호흡의 존재론을, 그러니까 공기색 입자를 얼마든 자신을 주어로 내세울 수 있는 그 자신의 경험 안에서 발견했기 때문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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