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이지혜
디렉팅: 이정식
신용진《공기색 입자》10의 n승(서울), 12.10-12.29, 2024
나는 말했다. “당신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였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왜 하필이면 선대 작가를 중심에 두고 당신의 생각이 펼쳐지나요?” 내 불만은 좀처럼 사그라지지 않았다. 미술로 말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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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기색 입자>(2024) 시리즈는 과학적 도상, 동양 철학, 그리고 예술적 실천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탐구를 시작했다. 이 작업의 출발점은 작고하신 한 원로 화백의 스튜디오에서 조수로 일했던 개인적인 경험이었다. 이 경험은 단순한 일상의 기록을 넘어, 물질의 근원, 우주의 질서, 그리고 그 안의 순환과 본질적인 변화 가능성이라는 거대한 질문으로 나아가는 사유의 촉매제가 되었다. <공기색 입자> 시리즈는 과학과 철학, 예술과 부산물처럼 이질적으로 보이는 영역들의 경계를 허물고, 이들을 하나의 화면과 공간 안에서 융합시키려는 시도였다.
이 작업의 직접적인 계기는 원로 화백의 <묘법> 제작 과정을 지속적으로 관찰하던 중에 찾아왔다. <묘법>은 한지를 연필로 눌러 도드라지게 하는 양각 기법을 통해 특유의 골진 질감을 만들어내는 작업이다. 이 과정에서 연필로 표면을 긁거나 사포로 가장자리를 다듬을 때, 물감과 한지의 미세한 입자들이 필연적으로 '탈락'하여 주변부에 쌓이는 것을 목격하게 되었다. 처음 나의 시선은 <묘법>이라는 수행의 과정과 그 결과물에만 고정되어 있었지만, 반복되는 조수 업무 속에서 나의 관심은 점차 작품의 중심에서 그 주변부로 밀려난 이 '탈락된 입자들'에게로 옮겨갔다. 작품을 완성하기 위해 필연적으로 발생하지만, 결국엔 버려질 운명인 이 미세한 존재들에 주목하게 된 것이다.
이 입자들이 통상적으로 '쓸모없는' 부산물로 간주된다는 사실 앞에서, 나는 과거 미화원으로 근무하며 매일 소각장을 오갔던 경험을 떠올렸다. 소각장에서 쓰레기들이 단순히 불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연소 후 남는 재나 발생하는 가스처럼 다른 형태의 물질로 변하고 열에너지를 방출하며 지구의 거대한 물질 순환계 안으로 다시 편입되는 모습을 목격했던 기억은, 인간의 죽음과 소멸, 그리고 그 이후의 존재 방식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으로 이어졌다. 인간이 죽으면 발인하여 화장하고 남은 유골을 수습하지만, 이것은 완전한 소멸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인식이었다. 수골 과정에서 발생하는 미세한 분진들은 다른 곳으로 흩어져, 일부는 다른 유골함에 섞여 들어가거나 공기 중에 흩날려 다른 존재의 일부가 될 수도 있다. 우리는 그 미세한 입자들이 여전히 '인간'의 일부인지 아닌지에 대해 관심을 두지 않으며, 마치 스튜디오의 '탈락된 입자'처럼, 인간의 마지막 흔적조차 특정 경계를 넘어서면 우리가 '먼지'라고 인식하거나 아예 인식조차 하지 않는 '쓸모없는' 미물이 되어버린다는 점을 깨닫게 되었다. 이러한 사유를 통해 나는 "영원한 소멸은 없다"는 생각, 즉 모든 것은 단지 형태를 바꾸어 지구 안에서 끊임없이 순환하고 있을 뿐이라는 관점에 이르게 되었다.
바로 이 지점에서 나는 우리가 '쓸모없다'고 여기는 스튜디오의 '탈락된 입자'와, 소멸한 것처럼 보이지만 다른 형태로 순환하고 있을 유골함으로 들어가지 못한 미세한 가루 사이에 과연 본질적인 차이가 존재하는가 하는 근본적인 질문과 마주했다. 이 질문은 <순환의 수>에서 쓸모없는 것으로 여겨지던 물질에서 존재의 본질적인 순환과 의미를 탐색하려는 시도로 이어졌다. <순환의 수>는 인간과 비인간, 존엄한 존재와 하찮은 폐기물 사이의 경계를 허물고, 모든 존재가 근원적으로는 동일한 물질적 순환 과정 안에 있음을 시사해 본 작업이다. 이러한 순환적인 사고는 노장 사상이나 불교의 윤회와 같은 동양 철학뿐만 아니라 질량 보존의 법칙이나 에너지 보존 법칙과 같은 현대 과학의 원리에서도 발견되는 보편적인 통찰이다. 우리는 표면적으로는 모든 것이 다르고 분리되어 있다고 인식하지만, 더 깊은 차원에서는 모든 것이 연결되어 순환하는 '하나'일 수 있다는 가능성에 주목하게 된 것이다.
나는 인연이 있던 원로 화백의 스튜디오에서 수집한 폐기물과 그것을 곱게 채반에 쳐내 얻어낸 미세한 입자, 즉 '먼지'를 활용하여 그의 존재와 예술적 부산물을 성찰하고자 했다. 작업은 고인이 되신 원로 화백의 사진이 출력된 캔버스 위에 이 폐기물 입자를 부착하고, 그의 출생년월일(311115)과 사망년월일(231014)을 중첩(3+1, 1+1, 1+5 … 2+3, 1+0, 1+4)하여 만든 세 자리 기호를 함께 제시하는 방식이었다. 이는 시간적 사건을 압축하려는 조형적 개입인데, 특히 기호의 색상은 보라색이 한 존재의 유한한 삶의 시작을 표상한다면, 흰색으로 표현된 기호는 삶의 끝과 동시에 그 너머의 이야기를 내포한다. 흰색은 소멸이나 부재가 아니라, 오히려 우리의 시각적 인지를 벗어났을 뿐 다른 차원에서 여전히 '있음'을 상징하는 차원 이동의 표식이다. 결국 이 작품은 한 존재의 끝이 완전한 소멸이 아닌 무한한 순환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하며, 작품의 부산물인 먼지가 고인의 삶과 예술을 연결하는 매개체가 되어, 죽음 이후에도 이어질 수 있는 존재의 흐름의 가능성을 표현해 보고자 했다.
나는 1년 반 동안 꾸준히 <묘법> 수행에서 탈락된 폐기물을 수집했고, 이 입자들을 화면 위에 음각, 즉 글자나 무늬를 새겨 넣는 방식으로 수행하여 <원형의 음각>을 제작하기에 앞서, 잠정적으로 <법묘 혹은 탈묘법>이라고 명명하며 그 존재를 인식하고 예술적 의미를 부여하고자 했다. 특히 음각 방식을 선택한 것은 <묘법>의 양각, 다시 말해 돋을새김 방식과 단순히 대비시키거나 위계를 뒤집으려는 의도라기보다는, 이 둘을 우리나라의 태극 문양에서 나타나는 '음'과 '양'처럼, 서로 다르면서도 함께 존재하며 우주의 질서를 이루는 '조화'의 관계처럼 보고자 했기 때문이다. <묘법>에서 수행의 결과로 돌출되어 작품의 중심으로 여겨지는 양각으로 표현된 날, 예를 들어 <원형의 양각>에서처럼 양(陽)의 기운을 나타내는 것이 있다면, 그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음각의 재료가 되는 탈락된 입자, 가령 <법묘 혹은 탈묘법>에서처럼 음(陰)의 기운을 상징하는 것 또한 수행의 본질적인 일부라는 인식이었다. 나는 양각이 드러내는 가시적인 세계와 음각이 품고 있는 비가시적인 물질성 및 시간성을 동등하게 중요하게 여겼고, 이 두 측면이 서로를 통해 존재하며 조화롭게 순환하는 전체적인 과정을 보여주고자 음각의 방식을 택했다. 이는 소각장의 쓰레기나 인간 존재의 마지막 흔적인 '먼지'처럼, 주목받지 못하고 사라질 운명처럼 보였던 이 '탈락된 입자'들이 사실은 전체 순환 시스템의 필수적인 일부임을 드러내며, 그 존재론적 질문을 시각화해보는 방식이었다. 이 모든 과정은 예술적 행위를 통해 쓸모없다고 여겨지던 대상들, 즉 탈락된 입자들이 새로운 의미와 가치로 승화될 수 있음을 제시해보는 탐구 과정이었다. 즉, 예술 생산 시스템의 주변부이자 부산물인 '쓸모없는' 대상, 예컨대 탈락된 혼합 입자에서 본인의 성찰, 미화원 경험이나 타인의 죽음, 순환에 대한 고찰을 통해 새로운 의미와 관계성, 즉 '쓸모'를 발견하고, 이름의 명명과 음각이라는 조형적 재구성을 통해 그 가치를 적극적으로 드러내보고자 했다. 나는 이 '탈락된 입자'들을 통해, 작품의 '있음(有)'의 가치가 탈락된 입자로 대표되는 '없음(無)'에 의해 가능해진다는 노자적 사유나, 최종 결과물과 그것을 가능하게 한 과정 및 부산물 사이의 상호 의존적인 관계를 성찰하며, 이 '먼지'들이 지닌 잠재적인 의미와 가능성을 탐구하고자 했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과학과 동양 철학이라는 서로 다른 인식 체계의 경계를 허물고 '중첩'시키는 형식 실험으로 이어졌다. 나는 원형 캔버스 위에 물질의 기본 단위를 상징하는 과학적 도상으로서의 원자 모형과 우주의 질서 및 순환을 나타내는 태극 문양 및 동양 철학의 오행 기호를 결합했다. 특히 원자 모형으로 현대의 양자구름 모델 대신 이미 폐기된 모델인 러더퍼드 모델을 의도적으로 변형하여 사용한 것은, 과학 지식 역시 고정불변의 진리가 아니라 시대에 따라 끊임없이 수정되고 변화하는 가변적인 체계라는 점에 주목한 결과였다. 이는 특정 시점의 '정확한' 과학 모델을 재현하기보다, 오히려 지금은 '구식'으로 여겨지는 모델을 가져와 변형함으로써 과학 지식 자체의 역사성과 상대성, 즉 시간 속에서의 변화 가능성을 암시하고자 했으며, 이는 물질과 인식의 근본적인 유동성 및 변화 가능성이라는 주제와 자연스럽게 연결되었다. 전자의 유동적인 상태는 홀로그램 글리터로 표현되어 그 끊임없는 운동과 예측 불가능성을 시각적으로 나타내고자 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원자핵을 표현하는 방식에 나타나는 '중첩' 전략이었다. 나는 <원형의 음각>에 먼지와 같은 '탈락된 입자'를 직접 사용하기도 했지만, 다른 작업인 <공기색 입자_평면>에서는 木(목), 火(화), 土(토), 金(금), 水(수)의 오행 한자들을 가독성을 파괴하여 '중첩'시켜 하나의 기호로 표현했다. 이는 물질의 가장 근본적인 차원에서도 본질적인 변화 가능성이 존재한다는 본인의 고찰과 연결되었다. 오행 체계 자체도 유동적인 사유 체계라는 점을 고려하면, 이는 과학적 모델과 동양 철학 체계가 모두 세계를 이해하려는 인간적 시도이지만, 더 이상 해체되지 않는 근원에는 본질적인 유동성이 자리 잡고 있을 수 있다는 현재의 고찰과 동시에, 그 믿음 또한 시간이 지나면 개념적 타당성이 미래엔 파괴될 수 있음을, 과학은 끊임없이 변화하는 학문이며 언어는 시간에 의해 의미의 맥락이 미묘하게 달라질 수 있다는 속성을 지닌다는 성찰을 통해, 전통의 시선, 즉 초기 원자 모델의 변형이나 오행 한자의 사용을 교차시켜 암시하고자 했다. 중첩된 오행 문자의 내부를 비워두는 방식 역시 이러한 우주에 관한 진실, 다시 말해 실체나 정체의 본질적인 유동성, 즉 세계의 궁극적 진리를 알 수가 없다는 인식적 성찰과 무한한 변화 가능성을 함의하는 장치였으며, 이는 언어 및 인식 체계의 변화 가능성 문제와 연결되었다.
나아가, 이 작업을 통해 원자 모형이나 입자와 같은 가시적인 것과 우주 질서, 순환, 또는 에너지와 같은 비가시적인 것 사이의 경계를 탐구해 보고자 하였다. '탈락된 입자'라는 물질적 재료인 '먼지'는 모든 존재가 결국 시간 속에서 변화하고 소멸하여 자연으로 돌아가는 보이지 않는 순환 과정을 상징하는 매개체가 되었으며, 물질과 비물질, 유한과 무한의 경계를 넘나드는 사유를 유도해보는 촉매제가 되었다. 또한, <묘법>의 부산물, 즉 작품 제작 과정에서의 주변부 요소가 작품의 중심 재료가 되고, 과학과 철학이라는 이질적인 틀이 전시를 통해 '중첩'되며, 양각과 음각이 상호 보완적으로 제시되는 형식 등은 과연 중심과 주변이 연기(緣起)에서 명확히 분리될 수 있는 독립된 조건에 있는지, 우리가 '먼지'로 상징한 것들의 역할을 그저 폐기해야 할 대상으로 바라보고 인식의 범주 안에서 규정해온 것은 아닌지 그 가능성을 질문해 보는 것이었다.
결론적으로 <공기색 입자> 연작은 스튜디오의 먼지라는 '쓸모없다'고 치부될 수 있는 부산물에서 우주적 순환과 존재론적 통찰이라는 '쓸모'를 발견하고, 이를 과학과 철학의 도상을 '중첩'하고 변형하는 조형적 실험을 통해 시각화한 작업이다. 이 과정에서 예술과 부산물, 가시적인 것과 비가시적인 것, 과학과 철학 등 다양한 영역의 경계를 허물고 융합함으로써, 표면적으로 무관해 보이는 것들이 사실은 깊이 연결되어 있으며 모든 존재가 끊임없이 순환하고 변형될 수 있다는 통합적 사고를 제안해 보고자 했다. 이는 '중첩'이라는 전략을 통해 인식 체계의 근본적인 유동성을 현대적 관점과 전통적 관점 모두를 융합하여 상상하고, 언어 너머의 근원적인 연결과 순환의 가능성을 탐색해 보려는 시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