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하루가 저물어간다. 내일의 풍경 또한 오늘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을 추측해본다. 나는 이 평범하고 무던한 일상의 패턴이, 치열한 누군가의 결과임을 자각한 적이 있다. 어둠과 빛이 교차하는 회색 스펙트럼 속에서, 붉은 손에 의해 폐기물은 잠시 우리들의 시야를 벗어날 뿐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미화 용역으로 근무했던 과거의 내가 있다. 과거의 나는 빛이란 ‘저편의 빛’인 ‘어둠’이 존재하기에 역설적으로 가치를 얻는다는 사고에서, 동료들이 버린 장갑을 다리미로 녹여 <저편의 양>(2022), <563의 양>(2023) 등을 발표하였다.
익명자의 반복되는 노동이 세상을 아름답게 정화하는 실천이라면, 내가 다루는 미(美)술은 과연 그 이름에 걸맞은 학문일지 자문해 볼 때가 있다. 전자의 ‘미’는 인간으로부터 시작되었으나, 끝내 외면하고 싶은 ‘추(醜)’를 일시적으로 가려주는 환영의 예술과도 같기 때문이다.
《공기색 입자》(2024)에서 탐구한 읽을 수 없는 한자(漢字) 기호를 전국에서 계속되는 보이지 않는 노동 근무 요일의 경계를 상징하는 기호로 치환하였다. 그리고 《563》(2023)에서 반려되었던 작품들을 함께 소환하여, 보이지 않는 것들과 우리의 관계를 고찰해보는 전시를 제작해보고자 한다.
이를 통해, 본 전시가 우리가 잠든 사이에도 계속되는 무명자들의 온기를 함께 상상해보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 오늘 밤에도 어딘가에서 근무할 대한민국의 이름 모를 생활인들의 노고에 감사의 마음을 간직하고자 한다."
-《6의 홍반도》(2025) 작업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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