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리마루 문화쉼터는 옛 인천 감리서가 있던 터, 즉 감옥이 있었던 공간이다. 그 길을 따라 내려가다 보면 독립운동가 백범 김구의 거리와 동상이 나타난다. 이 일대는 과거 김구가 투옥되고 노역을 행하던 장소라고 한다.
그의 이름의 ‘구(九)’는 아홉 구가 외자라고 한다. 동음이의어를 이용해 작품 명제를 자주 제작해 왔던 나는, 이번 전시에 이유가 있을 것으로 생각하고 김을 통해 그를 사유해 보기로 하였다. 그리고 그와 닿을 수 있는 물리적으로 가장 가까운 거리인 그의 무덤에 가서, 곱창김을 놓고 그의 기운이나 원자가 공명할지를 상상해 보았다.
그의 과거 이름은 김창수. 스무 살 무렵의 김창수는, 명성황후 시해 사건에 분노하여 황해도에서 일본 군인 스치다 조스케를 살해 시도한 혐의로 본 일대에 수용되어 청년 시기의 일부를 지냈다고 한다. 그러나 후대 문헌에서는 스치다가 군인이 아닌 상인, 즉 민간인이었을 가능성이 상존한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국가기관의 연구 사료인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치하포 사건」에서는 스치다가 일본군 무관으로 알려져 있지만, 무역 상인 혹은 약장사였다는 기록도 함께 전해지고 있다.
그것이 참이라면, 김구는 인천 감리서에 수감되어 있던 시절, 혹은 이후의 삶 속에서 김창수의 시절을 후회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 스치다 조스케는 어쩌면 민간인일 가능성도 동시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나는 얼굴도, 생년월일의 기록조차 남아 있지 않은, 이제는 자연의 일부가 됐을 그 존재를 군인을 뜻하는 ‘군(軍)’과 상인을 뜻하는 ‘상(常)’이라는 한자 기호를 중첩해, 행적을 알 수 없는 그를 김구의 묘에서 가져온 김과 대치해 보고자 하였다.
끝내 스치다 조스케의 운명처럼 김구도 우리 동족에게 악운을 맞이했고, 김구를 살해한 이 또한 그에 대한 민족의 복수로 명운을 다했다.
상호작용이 발생하는 인류의 순환은 시간이 지났음에도, 오늘날에도 지속되는 것처럼 보인다. 미움, 분노는 인류 공동의 본성일까? 그 또한 순환의 다른 모습이라 할지라도, 관성을 배반하며 살아갈 수 있는 고민과 작은 담화가, 타인들의 연쇄적 죽음을 교사 삼아 악연을 함께 미룰 수 있는 조그마한 실마리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비록 그것이 불가능한 일일지라도, 본 전시를 통해 공존의 길에 대한 질문을 남겨보고자 한다."
-《창수 곱창에 스치다》(2025) 작업노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