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작업은 '중첩'이라는 조형 전략을 활용하여 언어의 한계를 넘어선 소통을 탐구한다. 특히 <공색을 잇는 획>(2025)을 중심으로 한 관객 참여 및 AI 대화 텍스트 활용 작업들을 통해 가시적인 것과 비가시적인 것의 연결, 언어 이전의 원초적 소통, 그리고 추상적 개념인 '기(氣)'의 감각적 교환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였다.
작업은 <공기색 입자>(2024)에서 제기된 '공기색(空氣色)'이라는 제목 자체의 언어적 모순에서 시작되었다. 인간이 가시광선 스펙트럼상 빨간색부터 자주색까지만 인식할 수 있다는 한계에 대한 고민은 눈에 보이는 색(色)의 세계와 눈에 보이지 않는 공(空)이나 기(氣)의 세계가 어떻게 서로 연관되어 있는지, 그리고 이 둘을 아우르는 통합적인 방식으로 소통할 가능성은 없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탐구로 이어졌다.
이러한 <공기색 입자> 제목에 대한 고민은 불교 반야심경의 핵심 명제인 '색즉시공 공즉시색(色卽是空 空卽是色)'으로 나를 이끌었다. 이는 모든 보이는 형태(색, 色)가 실체가 없는 공한(空한) 것이며, 이 텅 빈 본성 또한 다양한 형태(색, 色)로 나타난다는 통찰, 즉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이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는 정의를 바탕으로, 나는 그 둘을 연결하는 매개이자 만물의 근원적 에너지로서 '기(氣)'와 '즉시(卽是)'의 역할에 주목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비가시적이고 파악하기 어려운 개념을 언어로 명확히 규정하는 것에는 필연적인 한계가 있었다. 이에 '언어의 중첩'이라는 조형 전략을 통해 이 문제에 접근했다.
<공색을 잇는 획> 작업에서 나는 '기(氣)'와 '즉시(卽是)' 두 한자를 하나의 공간에 의도적으로 '중첩'시켜 해독 불가능한 새로운 시각 기호를 만들어냈다. 이는 언어가 분리되고 의미가 고정되기 이전의 원초적인 상태, 즉 모든 것이 하나였고 본질적인 소통이 가능했던 상태를 상상해보려는 시도였다. 해체되고 '중첩'된 기호는 특정 언어의 의미 전달 기능을 거부하고, 언어 이전의 형태적, 감각적, 직관적 소통의 가능성을 열어놓는다. 나는 이 기호를 포토샵의 격자무늬 배경 위에 응축된 에너지 방출을 연상시키는 푸른 계열의 색상으로 표현하여, 동양 철학의 '기'라는 추상적 개념을 현대적 감각으로 재해석하고자 했다.
나아가 나는 <공색을 잇는 획>에서 제기된 '기(氣)'와 소통의 문제를 관객과의 직접적인 상호작용으로 확장했다. 전시 현장에서 '기(氣)'에 대한 인식을 묻는 설문을 진행하고, 특히 관람객이 생각하는 '기'를 직접 그림으로 표현하도록 요청했다. 그리고 나는 이렇게 관람객이 직접 그린 '기의 형상'과 본인의 작품인 <공색을 잇는 획>을 서로 교환하는 행위를 통해, 작가와 관객이라는 위계를 떠나 '서로의 기(氣)에 관한 이해가 오고 가는' 상징적인 소통의 장을 마련하고자 했다. 이는 언어의 한계를 극복해 보려는 통합적 소통 방식에 대한 구체적인 실천이자, 작가와 관객, 개념과 감각 사이의 경계를 허물고 상호적인 에너지 교환의 가능성을 탐색하는 중요한 실험이었다.
이러한 소통 탐구는 AI와의 대화 텍스트를 활용한 작업으로 이어졌다. <비움과 채움의 매개> 연작의 핵심 아이디어는 AI와의 대화를 통해 얻은 통찰, 예를 들어 과학, 종교, 철학의 본질적 연결성에 관한 깨달음과 그 소통 또한 분리된 언어에 의존한다는 한계를 조형적으로 실험한 것이다.
나는 AI와의 대화 텍스트 전체 페이지를 물리적으로 '중첩'시켜 하나의 밀도 높은 덩어리로 만들었다. 이는 <이것은 논문이 아니다>(2024) 연작과 유사하게 언어의 외형을 '중첩'하는 방식이었지만, 여기서는 언어가 분리되기 이전의 원초적인 융합 상태를 조형적으로 구현하려는 적극적인 의도를 담고 있다. 나는 이 '중첩'된 텍스트 덩어리를 하나의 '그림'으로 규정지어 보고, 배경의 포토샵 격자무늬가 점차 텍스트 영역을 침범하며 드러나는 연출로, 관객이 흑색과 백색이라는 이분적 사고를 떠나 이전에는 보이지 않았거나 인지하지 못했던 바탕으로서의 '기(氣)'를 감각하도록 유도해 보고자 했다.
결론적으로 <공색을 잇는 획>과 이와 연계된 관객 참여 및 AI 대화 텍스트를 활용한 작업들은 '기(氣)'라는 근원적 연결성을 중심으로 언어와 비언어, 개념과 실재, 분리와 통합 사이의 관계를 다각적으로 탐구하고자 했다. 특히 '언어의 중첩'이라는 조형 전략과 관객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언어의 다면성과 한계를 인정하면서도, 그 너머의 통합적인 소통을 모색하려는 실천을 해보고자 했다. 이러한 작업은 관객에게 언어 중심적 사고의 틀을 벗어나 세계를 감각하고 이해하는 다른 방식의 가능성을 제안하며, 중첩 기법을 통해 언어 너머의 소통과 세계를 통합적으로 이해해 보려는 시도를 추상적이고 철학적인 차원에서 구현해 본 사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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