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물

《화양연화》

<홍연의 수>(2023)는 <유일무이의 수>(2022)에서 다룬 부모-자식 간의 직접적인 유전적 연결을 넘어, 중국의 '월하노인' 설화와 동아시아의 '운명의 붉은 실' 전설을 참조하여 참여자의 조상 대대로 이어져 온 보이지 않는 인연의 연결망으로 탐구를 확장하는 작업이었다. 이 작업에서 숫자는 단순한 생년월일 표기를 넘어, 참여자를 존재하게 만든 수많은 선조들의 만남과 선택이 누적된 무수한 우연과 필연의 '붉은 인연'을 상징하는 기호로 재해석된다.


나는 참여자의 아버지, 참여자 본인, 참여자의 어머니의 각 6개 생년월일, 즉 총 18개의 숫자에 <유일무이의 수>에서 활용한 기호 변환 방식을 적용하여 각각 3개의 중첩된 기호로 변환했다. 각 인물의 정체성을 3개의 기호로 나타낸 것은, <심방의 수>(2023)에서 영감을 얻어와 한국인의 이름이 주로 세 글자로 이루어져 있다는 점에 착안하여, 숫자 '3'이 주는 미묘하고 정서적인 기운이나 안정감을 통해 개인의 정체성을 함축적으로 표현하고자 한 의도에서 비롯되었다. 이렇게 생성된 총 9개의 기호, 다시 말해 아버지의 기호 3개, 참여자의 기호 3개, 그리고 어머니의 기호 3개가 순서대로 배열되었다.


작업의 기본 바탕과 아버지, 어머니를 상징하는 여섯 개의 기호는 <유일무이의 수>처럼 보라색 계열을 주로 사용했다. 반면, 참여자를 상징하는 가운데 세 개의 기호는 보이지 않는 붉은 실이라고도 불리는 홍선이 보라색으로 표현된 유전적 혼합과 융합되어 참여자라는 새로운 존재를 탄생시키는 과정을 시각화하듯, 붉은 선과 보라색이 함께 중첩되어 표현되었다. 마치 새로운 생명이 '잉태'되는 순간처럼, 보이지 않는 인연의 힘과 구체적인 유전적 연결이 결합되는 지점을 상징적으로 나타내 보고자 하였다.


이처럼 <홍연의 수>는 참여자에게 개인의 존재를 연결된 관점으로 사유하게 하는 작업이었다. 작품을 통해 '나'라는 존재가 고립되고 단절된 개체가 아니라, 과거로부터 이어져 온 거대한 관계망 속의 한 '지점'임을 시각적으로 암시해 보고자 했다. 이러한 인식의 전환은, 당면한 젠더 갈등이라는 사회적 분열을 넘어 더 근원적인 차원의 인간적 연결과 유대감을 회복할 수 있다는 희망에서 비롯된 것이다. 궁극적으로 이 작업은 '개별적 자아'라는 사회적 통념의 경계를 허무는 사유의 장으로서, 작품 앞에서 참여자는 과거와 현재, 혹은 먼 타인으로 치부될 수 있는 조상, 가족의 경계를 넘나들며, 자신을 분리된 존재가 아닌 연결된 존재로서 성찰해보는 시간이 됐다.

 

<홍연의 수>를 위한 준비, 작업실 촬영 사진_2023

<홍연의 수> 관람객 참여 영상, 시작공간 일부_2023

 

<홍연의 수>, 21 x 30 cm, 유화지에 아크릴_2023
<홍연의 수>, 21 x 30 cm, 유화지에 아크릴_2023
<홍연의 수>, 21 x 30 cm, 유화지에 아크릴_2023
<홍연의 수>, 21 x 30 cm, 유화지에 아크릴_2023
<홍연의 수>, 21 x 30 cm, 유화지에 아크릴_2023
<홍연의 수>, 21 x 30 cm, 유화지에 아크릴_2023
<홍연의 수>, 21 x 30 cm, 유화지에 아크릴_2023
<홍연의 수>, 21 x 30 cm, 유화지에 아크릴_2023
<홍연의 수> 기호 합성 과정_2024
<홍연의 수> 기호 합성 과정_2024
<홍연의 수> 프로젝트 설명_2024

《화양연화》 전시 전경, 시작공간 일부_2023

《화양연화》 전시 전경, 시작공간 일부_2023

모닝와이드 영상 링크

 

《화양연화》 아카이브 영상, 시작공간 일부_2023

<홍연의 수> 설치 전경, 익명의 관람자의 방_2024
<홍연의 수> 설치 전경, 익명의 관람자의 방_2024
<홍연의 수> 설치 전경, 익명의 관람자의 방_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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