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물

《저편의 양》

본 작업은 미화 용역 근무라는 특수한 경험에서 시작되었다. 이 경험은 본인의 작업 환경을 넘어, 직접 목격한 사회적 노동의 현장과 그로부터 파생된 일상적 시간성에 대한 성찰로 이어졌다. 이 과정에서 본인은 평소에는 깊이 주목하지 않았거나 다른 시각으로 보지 못했던 도시의 이면, 즉 간과되기 쉬운 존재들과 그들의 노동, 그리고 버려지는 것들 속에서 새로운 가치를 발견해 보고자 했다.

 

<저편의 양>(2022) 연작은 바로 이러한 미화원 근무 경험에서 비롯되었다. 미화원의 근무복, 동료들이 1년간 사용하고 버린 장갑들, 폐기물 수거 트럭 이미지, 마포 자원회수시설의 영상 등 도시의 숨겨진 이면을 주요 소재 및 재료로 삼았다.

 

작품명 <저편의 양>은 빛과 밝음을 의미하는 '양(陽)' 앞에 그것과 대비되는 듯한 '저편'이라는 수식어를 결합한 것으로, 음(陰)과 양(陽)이 상호 의존하며 조화로운 순환 관계를 이루는 동양적 사유를 반영한다. 이는 '저편'으로 여기는 영역에도 그 나름의 가치, 즉 동양 철학에서 빛과 밝음을 의미하는 '양(陽)'이 존재하며, 이 둘은 서로를 통해 완전한 의미를 갖게 됨을 시사한다. 이 작품명을 통해 이분법적 경계를 넘어 모든 존재와 현상이 연결되어 순환한다는 통합적 관점에서 대상을 바라보고자 했다.

 

이러한 주제 의식은 작품의 형식과 기법 선택으로 구체화되었다. 실제 동료 미화원들이 1년간 사용했던 장갑들을 수집하여, 황마 캔버스 천 위에 다리미로 열을 가해 녹여 붙이는 방식으로 노동의 에너지를 표현하고자 했다. 땀과 폐기물로 얼룩진 이 장갑들은 <이미지 되지 못한 이미지>(2020)처럼 본래 폐기될 사물이었지만, 작품 속에서는 시간의 흔적과 노동의 가치, 동료애를 담지한 오브제로 활용됐다. 이는 버려진 대상에서 인간적인 의미를 발견하고 이를 작품으로 승화시켜보려는 실천이었다.

 

<저편의 양>, 240 x 220 cm, 황마, 알루미늄 족자, 다리미로 녹여낸 사용된 미화원의 장갑_2022

<근무 중 수집한 사용된 미화원의 장갑 오브제> 가변 설치 영상, 공간 운솔_2022

<저편의 양> 설치 전경, 공간 운솔_2022

또한, 같은 팀을 촬영한 폐기물 수거 트럭 이미지는 낮(아침)의 폐기물 적재 완료 모습과 밤(야간)의 폐기물 상차 모습을 렌티큘러 인쇄 기법으로 중첩시켜, 우리가 잠든 시간 도시를 정화하는 보이지 않는 이들의 존재감을 상기시켜보고자 했다. 더불어, 마포 자원회수시설 내부를 촬영한 영상 작업으로 일반인이 쉽게 접할 수 없는 풍경을 함께 제시했다. 산더미처럼 쌓인 쓰레기와 악취 속에서 느껴지는 압도적인 시각적 경험은, 본인이 소비하고 버리는 것들의 최종 집결지가 자아내는 강렬한 현실을 통해 도시 시스템의 이면과 소비 사회에 대한 성찰을 담는다. <저편의 양> 연작은 이처럼 미화원이라는 특정 직업군을 통해 사회 시스템 유지에 필수적이지만 간과될 수 있는 비가시적 존재들을 예술 작품으로서 가시화하고, 도시를 아름답게 만드는 노동, 즉 미화원이 창출하는 실천적 '미(美)'와 예술의 '미(美)' 사이의 연결성을 탐구하며, 그 속에서 역설적 아름다움과 숭고함을 재고하려는 시도였다.

 

<현철, 복석, 석춘>, 90 x 120 cm, 렌티큘러, 알루미늄 액자_2022

<현철, 복석, 석춘> 렌티큘러 변화 모습, 공간 운솔_2022
<현철, 복석, 석춘> 설치 전경 영상, 공간 운솔_2022

<마포 자원회수시설 작업 사진>
<사물이 불타는>, 00:06:19, 단채널 영상_2022

영상 작업 링크

 

<사물이 불타는> 설치 전경 영상, 공간 운솔_2022

<습기의 자화상>은 렌티큘러 기법을 사용하여, 미화원 근무 중 안전모에 성에가 낀 것을 발견하고 직접 기록한 본인의 셀카 이미지와, 그 이미지에서 본인의 얼굴은 사라지고 안전모의 성에만 강조된 이미지가 관람자의 시선에 따라 교차하도록 제작되었다. 이는 실제 경험의 순간을 포착한 기록을 보여주는 동시에, 얼굴이 사라지고 단지 성에라는 흔적만 남는 이미지를 통해 존재의 사라짐과 남겨진 흔적에 대한 관람자의 호기심을 유발하는 작업이다.

 

<습기의 자화상>, 120 x 90 cm, 렌티큘러, 알루미늄 액자_2022

<습기의 자화상> 렌티큘러 변화 모습, 공간 운솔_2022
<습기의 자화상> 설치 전경 영상, 공간 운솔_2022

<습기옥>은 새 안전모 위에 글루건을 사용하여 인공적인 '성에'를 세심하게 구현한 오브제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안전모 자체가 아니라 그 위에 맺힌 '성에'라는 현상이다. 얼핏 보면 성에는 그저 차가운 환경에서 발생하는 일시적이고 곧 휘발되어 사라질 액체 방울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본인은 바로 이 현상 속에서, 매일 밤 도시의 청결을 위해 묵묵히 헌신하는 미화 노동자들의 보이지 않는 숨결과 노고, 그리고 그들에 대한 감사함이라는 의미와 가치를 담고자 했다. <습기옥>은 이처럼 간과되기 쉬운 현상, 즉 안전모에 맺힌 성에에 주목하여 그 안에 잠재된 의미를 포착하고, 이를 글루건이라는 인공적인 재료를 통해 영속적인 형태로 만들어보고자 했다.


글루건을 한 방울씩 짜서 고드름처럼 보이도록 구현한 형태는 본인의 경험을 출발점으로 삼되, 오늘 밤에도 대한민국 전역에서 밤새 도시를 정화하는 수많은 미화원들의 보이지 않는 숨결 전체를 헤아려보려는 시도에서 비롯되었다. 개개인의 작은 숨결이 모였을 때의 그 총량을 가늠하기란 불가능하지만, 본 작업은 지속적인 노동의 규모에 대한 상상을 이어주는 시각적 표식으로 기능한다.

 

<습기옥>, 안전모에 글루_2022

<습기옥> 연작 영상, 공간 운솔_2022
<습기옥> 설치 전경 영상, 공간 운솔_2022

<습기옥> 설치 전경, 공간 운솔_2022

<습기옥> 설치 전경 영상, 공간 운솔_2022

<습기옥> 설치 전경, 공간 운솔_2025
<양방의 군상>, 가변설치, 투명마네킹, 사용된 미화원의 장갑 및 근무복_2022
<양방의 군상> 설치 전경, 공간 운솔_2022
<양방의 군상> 설치 전경, 공간 운솔_2022

 

<양방의 군상> 설치 전경 영상, 공간 운솔_2022
<양방의 군상> 디테일 영상, 공간 운솔_2022

<소각의 하루> 연작은 매일 반복되는 미화 노동의 시간성과 하루하루가 소각되듯 지나가는 경험에 주목했다. 동양 문화권의 요일 표기 한자 의미에 착안하여 각 요일에 해당하는 상징적 물질, 즉 달 조명, 그을린 종이, 비 맞은 종이, 바크 조각, 금박지, 또는 햇빛 흔적 등을 유화지에 콜라주했다. 이를 통해 흘러가는 듯 보이는 노동 시간과 하루의 흐름 속에서 우주적 순환의 단면을 조명하고자 했다. 손상되었거나 자연에서 온 파편으로 여겨질 수 있는 이러한 재료들은 시간의 흐름과 소멸, 순환을 상징하는 조형 언어로 기능했다. 다만, 토요일은 근무 중 쉬는 날이므로, 해당 요일은 의도적으로 공백 처리했다.

 

<소각의 하루_월>, 레디메이드 달 조명_2022
<소각의 하루_화>, 유화지에 불, 알루미늄 액자_2022
<소각의 하루_수>, 유화지에 빗물, 알루미늄 액자_2022
<소각의 하루_목>, 유화지에 바크(나무 껍질), 알루미늄 액자_2022
<소각의 하루_금>, 유화지에 금박(24k), 알루미늄 액자_2022
<소각의 하루_일>, 공간에 햇빛, 암막천_2022

<미대칭변초경> 시리즈의 출발점은 미화 용역 근무 중 파주 현장에서 목도한 '재활용 대란'이라는 사회적 현실에 있었다. 2018년 중국의 폐기물 수입 금지 조치로, 나는 특장차의 운전수와 갈 곳을 잃은 재활용 쓰레기가 산더미처럼 쌓여가는 압도적인 풍경을 만들어 내는 것을 마주하게 되었다. 이를 계기로 본질적으로 무질서하고 비대칭적일 수밖에 없는 압축 폐기물 덩어리, '베일(bale)'의 이미지를 현장에서 찍어 작업의 소재로 활용했다.

 

무질서한 본래의 베일의 속성을 완벽한 대칭이라는 인위적인 질서로 재구성하고, 이를 다시 여러 프레임에 걸쳐 '중첩'시키는 조형 전략을 구사해 다층의 의미를 생성하고자 했다. 강제된 대칭과 중첩된 이미지가 만들어내는 불편함과 현란함은 당면한 폐기물 위기의 압도감과 복잡성, 어쩌면 문제에 대한 피상적이거나 인위적인 해결 방식의 한계를 함의한다. 쓸모없다고 여겨지거나 우리가 함께 해결해야 하지만 외면되오는 인류 공동의 문제를 대칭화나 중첩과 같은 예술적 개입을 통해 어지러운 시각적 대상으로 만들어, 관람자가 이 문제를 외면하지 않고 흥미를 갖도록 유발하여 이를 공론의 장으로 끌어오고자 했다.

 

<미대칭변초경 작업 과정>
<미대칭변초경>, 50 x 50 cm, 렌티큘러, 알루미늄 액자_2021

<미대칭변초경> 렌티큘러 변화 모습 영상, 공간 운솔_2022

<미대칭변초경>, 50 x 50 cm, 렌티큘러, 알루미늄 액자_2021

<미대칭변초경> 렌티큘러 변화 모습 영상, 공간 운솔_2022

<미대칭변초경>, 50 x 50 cm, 렌티큘러, 알루미늄 액자_2021
<미대칭변초경>, 50 x 50 cm, 렌티큘러, 알루미늄 액자_2021
<미대칭변초경>, 50 x 50 cm, 렌티큘러, 알루미늄 액자_2021
<미대칭변초경>, 50 x 50 cm, 렌티큘러, 알루미늄 액자_2021
<미대칭변초경>, 50 x 50 cm, 렌티큘러, 알루미늄 액자_2021
<미대칭변초경>, 50 x 50 cm, 렌티큘러, 알루미늄 액자_2021
<미대칭변초경>, 50 x 50 cm, 렌티큘러, 알루미늄 액자_2021
<미대칭변초경>, 50 x 50 cm, 렌티큘러, 알루미늄 액자_2021
<미대칭변초경>, 50 x 50 cm, 렌티큘러, 알루미늄 액자_2021
<미대칭변초경>, 50 x 50 cm, 렌티큘러, 알루미늄 액자_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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