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유일무이의 수>(2022) 연작에서 숫자를 활용한 기호 변환과 중첩의 방법론을 선보였다. 아라비아 숫자를 디지털 숫자로 재조합해 부모와 자식 간의 유전적 연결을 보라색 혼합 색조로 은유적으로 나타냈다. 본인은 주사위와 숫자 기호의 조합을 통해 수많은 우연 속에서 등장한 '우리'의 존재를 물리학의 엔트로피(무질서도) 개념에 빗대어 표현했고, 이는 인류의 시초와 이어져 온 생명의 연속성을 탐구하는 작업이었다. 내가 조상으로부터 받은 유전적 특성과 기억을 통해 우리의 존재가 형성됨을 상징적으로 비유하며, 보라색을 통해 '개별적 존재로서의 나'와 '나를 만든 이들' 간의 관계성을 사유하게 하려는 목적이었다. 이러한 근원을 향한 탐구는 현대 사회가 직면한 분열된 관계 속에서 궁극적인 자신을 고찰하게 하려는 의도였다.
김용권은 <심방의 말>(2022)에서 부모님과 자신의 이름을 병원 심장 그래프의 녹색에서 영감을 받아 심박처럼 불규칙한 형태로 표현하며, 이를 녹색 회화로 인간 존재의 흐름을 형상화했다. <심방의 말> 연작에서 그는 1살부터 만났던 모든 기억의 이름들을 최대한 나열해, 우리가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존재하는 사회적 개체일 수밖에 없음을 비유하고자 했다. 이는 타인과의 상호작용이 우리의 정체성을 형성한다는 사실을 직관적으로 전달하고자 하는 목적이었다. 그는 작업을 통해 타인 속에서 발견되는 나의 정체성을 성찰하게 해, 사회적 관계 속에서 우리의 자아는 연결될 수 밖에 없음을 상기시키려 했다.
<심방의 수>(2023)는 나와 김용권이 인간의 정체성을 탐구한 관람객 참여형 프로젝트였다. 먼저 본인이 관람자의 생년월일 6자리를 <유일무이의 수>의 두 수 중첩 메커니즘을 이용해 3자리 기호로 나타내면, 김용권이 관람자의 이름을 자음 모음 단위로 분절하여 심박 그래프처럼 덧대는 형식이다. 예를 들어 '용진'이라는 이름은 '이응, 요, 이응, 지읒, 이, 니은'을 이어서 시각화한다. 이처럼 본인의 숫자 기반 기호 변환과 김용권의 이름 기반 심박 그래프 형태 변환이라는 두 개의 서로 다른 조형 언어를 하나의 화면에 혼합하는 방식으로 익명의 관람자 생년월일과 이름을 바탕으로 작품을 제작했다. 이는 타인의 개별성과 차이를 존중하면서도 그 안에서 본질적인 '같음'을 사유하고, 현대 사회의 분열과 혐오에 대한 비판적 성찰을 바탕으로 상호 이해와 공존을 제안하려는 시도였다. 더 나아가 작가 간, 작품 간, 나와 타자 사이의 경계를 허물고 융합하려는 의도를 담았다.
오늘날 개인의 개성을 강조하는 사회 속에서 차이를 갈망하는 동시에 수많은 혐오와 갈등이 조장되는 현실에 대해, 본 프로젝트를 통해 다름 속에서 우연을 함께 경험하고 있는 이웃과의 '동질성'을 사유해보는 자리가 되길 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