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일무이의 수>(2022) 연작은 근 10년간 지속되어온 사회적 성별 갈등과 대립 현상의 고찰에서 출발하였다. 본인은 사회적 문제를 심화해, 심각한 대립 현상 뒤에 숨겨진 근본적인 물음, 즉 현실과 그것을 이해하는 방식이 확실한 것인지를 고민하였다. 결국 이 작업은 구체적인 사회 문제에서 시작하여, 우리 존재의 가장 기본적인 본질을 탐구하는 질문으로 나아갔다.
나는 이러한 생각들을 바탕으로, 작업을 통해 숫자로 우리 존재의 본질을 탐색하려는 실험을 진행했다. 주사위를 이용해 제작했던 <존재의 확률>(2021)을 계기로 10면체 주사위를 던져 나온 두 개의 숫자를 디지털 숫자로 변형하고, 이 두 숫자를 산술적 규칙을 따르지 않고 시각적으로 포갰다. 이렇게 겹쳐진 숫자를 아날로그적인 필기체 획으로 변환하여, 마치 숫자를 닮았지만 숫자가 아닌듯한 조형적 기호로 제시하였다. 이 과정은 태초에 누구도 닮지 않은 독립적인 남성과 여성이 알 수 없는 확률로 존재했다고 가설 지어본다면 그들은 '원본'일 수 있지만, 그 이후의 모든 인류는 물리적 엔트로피(열역학 제2법칙, 무질서도)의 점진적 증가로 남녀의 극단에서 아득히 멀어진, 무수한 혼합과 변이의 결과물인 우연의 '사본'이라는 인식이다.
본인은 이러한 '중첩'이라는 조형적 실험을 통해 타인과 자신이 다르다고 생각하는 인식 이면에 놓인 근본적인 물음에 다가갔다. 특히, 마치 숫자를 닮았지만 의미가 규정되지 않은 포개진 기호를 통해, 우리가 마주하는 이 세계의 진실, 즉 우리 존재 자체가 과연 독립적일 수 있는가에 대한 근원적인 물음을 탐색하고자 했다. 이는 질서정연해 보이는 세계에 내재된 '알 수 없는 측면'은 무엇일까에 대한 고찰로 심화되었다.
본인은 이 과정을 다양한 매체와 재료의 상징성을 통해 복합적인 의미의 층위를 탐구했다. 주사위 던지기로 선택된 두 개의 숫자는 그 자체로 우연성과 개별성을 상징하며, 새로운 존재의 탄생을 은유한다. 이는 단순한 결과 제시를 넘어, 두 개의 다른 우연적 존재, 다시 말해 알 수 없는 현실에 대한 각기 다른 인식이 만나 예측 불가능한 존재, 즉 생명력을 탄생시키는 상태를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이처럼 <유일무이의 수> 연작은 젠더 이분법이라는 사회적 현상에 대한 비판적 시각에서 출발하여, 예측 불가능한 우연 속에서 더욱 선명해지는 동질성을 함께 보여주고자 한 작업이다. 우리는 비록 운에 의해 표면적 성별이 결정되지만, 부모로부터 형질을 모두 물려받는 양가적 조건을 공유한다. 이는 공중 화장실의 남성색과 여성색의 혼합을 상징하는 보라색으로 작품에 표현되었다. 이러한 혼성적 존재들은 물리적 질서에 따라 시간이 지날수록 무질서도가 증가함에도 불구하고, 아이러니하게도 본질적인 색채의 동질감으로 수렴된다는 고찰을 내포하였다. 그렇기에 혐오를 벗어난 상호 존중의 성찰을 환기시키고자 했다. 중첩을 통해 의미의 모호성을 암시하는 것은, 우리가 통용되는 상징계의 질서(통용되는 산술 규칙)에 균열을 내, 그 너머의 사유를 이끌어보기 위한 조형적 방법론이었다.
<태초의 수> 연작은 10면체 주사위 큐브를 던져 나온 일반 수, 십진법 자연수의 '일반' 숫자를 사용하였음
<유일무이의 수> 연작부터는 10면체 주사위 큐브를 던져 나온 두 수 합성. 즉, 두 수가 중첩된 수를 '닮은' 기호를 사용하였음
(하단 메커니즘 참조)
《유일무이의 수》 전시 스케치, 아트스페이스 인_2022
<유일무이의 수> 평면 연작과 함께 제시되는 다매체 작업들은 이러한 이분법적 구분을 탐구하는 주제를 다양한 방면으로 보여주고자 했다.
먼저, <ㅠ>는 우리가 매일 쓰는 매트리스와 전통 무덤인 고인돌의 모습을 합쳐 만든 입체조형 작품이다. 본인은 매트리스가 현대인에게 태어남, 사랑, 휴식, 그리고 죽음의 마지막 공간이 될 수 있다는 점에 주목했고, 여기에 나무로 'ㅠ'자 구조물을 제작하여 삶과 죽음, 과거와 현재라는 시간의 구분을 하나의 공간 안에 교차시켰다. 'ㅠ'라는 제목은 고인돌의 모습과 슬픔이나 눈물을 나타내는 이모티콘을 동시에 떠올리게 함으로써, 관람자로 하여금 대과거로부터의 수많은 탄생과 죽음의 순환을 사유하게 하는 장치이다. 이 작품을 통해 개인의 삶의 주기와 인류의 거대한 순환의 역사를 연상하게 하며, 매트리스라는 일상적인 오브제와 고인돌이라는 과거의 흔적을 통해 삶과 죽음, 그리고 과거와 현재가 단절된 것이 아니라 연속적으로 이어져 있음을 나타내고자 했다.
이러한 구분을 넘어서는 시도는 혼합 재료 설치 작업인 <창과 거울목>에서 성별을 나타내는 기호(♂, ♀)를 둘러싼 서로 다른 유래 이야기들을 겹쳐 보이게 만드는 방식으로 제작되었다. 본인은 학문적 정설인 '마르스의 창'과 '비너스의 거울' 표식 기원과,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서 발견한 '남녀 성기 상징설'이라는 두 가지 상반된 이야기를 한 작품 안에 공존시켰다. 나무 구조물과 반사되는 아크릴판의 특성을 이용해 첫 번째 이야기를 암시적으로 드러냈고, 동시에 과거 연인과의 첫 관계에서 나온 혈흔이 묻은 장판 오브제를 포함시켜 두 번째 믿음을 아주 직접적이고 개인적인 방식으로 시각화했다. 이는 사회적으로 숨기거나 금기시되는 사적인 요소를 공적인 예술 공간으로 가져와 상징과 실체, 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 깨끗함과 금기되는 것 사이의 이분법적 구분을 흔들며, 관객들에게 성별, 생명, 그리고 성별 기호가 가진 다양한 의미를 다층적으로 사유하게 하고자 했다.
마지막으로 <존재치 않은 군상의 6400가지의 감정>은 두 개의 채널로 이루어진 영상 설치 작업으로, 시각적으로는 본인과 여성 모델의 하관을 한 화면에 중첩하고, 청각적으로는 두 사람의 목소리가 예측할 수 없게 뒤섞여 들리도록 구성했다. 본인은 두 사람이 하버드 대학 심리학자가 분류한 8가지 기본 감정을 상상하며 0부터 9까지의 숫자를 소리 내어 말하는 짧은 영상 클립들을 녹화했고, 디빅스가 이 클립들을 무작위로 재생하여 이론적으로 6400가지에 이르는 예측 불가능한 시청각적 경험을 자아내게 했다. 이렇게 시각과 청각을 겹치고 무작위 출력 시스템을 사용하는 것은 남성과 여성이라는 이분법적인 구분, 개별 감정의 명확한 구분, 그리고 언어적 의미의 확정성 사이의 경계를 보여주고자 한 시도였다. 특히 이 작업은 남녀 간의 대화에서 흔히 발생하는 오해와 예측 불가능한 언어로 정의하기 어려운 복잡한 감정의 상황을 연출해, <유일무이의 수> 평면 연작의 기호 체험을 시청각적으로 구현함으로써, 인간의 감정과 소통에 대한 사유를 촉발시켜보고자 했다.
본인은 이러한 장치들을 통해 사회적 갈등에서 시작된 문제의식을 넓혀, 사회가 둘로 나누어 생각하는 구분들에 의문을 제기하고, 우리 존재를 되묻는 철학적인 질문을 던져보고자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