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물

《563》

"생겨난 것은 소멸되고 없어진다. 매일 감각하는 오늘의 하루조차 그렇게 소비되고 있다. 지속될 것만 같은 현재의 순간도 시간이 지나고 나면 소각의 운명을 맞이할 것이다. 무엇을 감각하고 느끼는 볕의 이야기가 잠들면 그늘의 이야기가 깨어난다. 어둠의 흔적은 때때로 예술의 환영보다 오히려 일상을 거짓 시각화하고 있는 기이한 마법처럼 보이기도 한다. 환경이 다각도로 우리들에게 소비될 때 정작 더러움을 아름다움으로 치환하고 있는 인류의 이야기는 어찌하여 미의 영역에서 기록되오지 않던 것일까? 그들은 세상을 반사시키고 있는 음이 아닌, 또 다른 저편의 양이다. 당연하다고 치부시 되는 통념이란 보다 보이지 않는 것에 좌우지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저편의 양》(2022) 작업노트-

 

과거 미화 용역 근무 시절, 수거원이던 본인은 각 특장차의 운전수와 동행하며 5개 구(마포구, 서대문구, 용산구, 중구, 종로구)의 쓰레기가 소각되는 마포의 자원회수시설과 파주 일대의 재활용 선별 장소 등에서 쏟아지는 서울의 폐기물을 바라보며 매일의 아침을 맞이하게 되었다. 그렇게 낮밤이 뒤바뀐 일 년을 보내게 되었는데, 유사한 밤의 이야기들이 본인의 낮을 일관되게 유지시켜주던 장치의 거울은 아니었을지 사색해 보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한 동기에 영감을 받아 재직 기간 중 사진과 영상, 오브제 등을 수집했고, 추후 시간이 흘러 작업으로 정제하여 발표하게 된 것이 회화 <저편의 양>(2022)이다. 제목은 '음'을 뒤집어 생각해 본 발상으로서, 어둠이란 그저 암적 대상이 아닌 빛의 유무를 판단할 수 있게 하는 존재이기에 빛 기준에서의 빛이 어둠일 수도 있다는 사유를 바탕으로 동료들이 버린 장갑을 다리미로 녹여 작품을 제작하였다. 이에 반의를 함유하는 수식어구인 '저편'에, 암과 같은 그늘이 역설적으로 밝음일 수도 있다는 '양'이라는 언어를 합성하여 이름을 작명하였다.

 

<저편의 양>은 시간의 본질과 자연의 순환이라는 지속가능성에 대한 관점으로 심화되어 <오륙삼의 양>(2023)으로 이어졌다. 전시의 타이틀로 결정한 563은 365일에 해당하는 일 년의 숫자를 거꾸로 한 음절씩 뱉어낸 말로, 12개월마다 돌아오는 우리나라의 사계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다. 1년 365일을 거꾸로 읽은 제목은 고정된 시간 체계, 즉 언어적 지시가 지닌 인위성에 대한 질문에서 출발한다. 실제로 1년의 흐름은 엄밀히 말해 365일이 아니라 약 365.2422…일이라는 점에서, 본인은 언어가 정확히 담아내지 못하는 시간의 측면을 주목했다. 대신 자연의 변화에 민감한 동양의 24절기에 해당하는 각 날짜의 윤년으로 인하여 가변되는 이틀을 <유일무이의 수>(2022)의 두 개의 숫자 합성 메커니즘으로 중첩해 표현하여 끊임없이 미묘하게 변화하는 시간의 유동성을 포착해 보고자 했다. 이는 계절의 순환 속 풍경이 미화 노동자들의 보이지 않는 손길을 통해 유지된다는 성찰과 함께, 고정된 시간 개념에 대한 인식을 전환하고 자연의 순환과 인간 노동이라는 주제를 확장시켜보려는 목적이었다.

 

<오륙삼의 양> 연작 x 24, 200 x 280 cm, 캔버스에 유채, 홀로그램 글리터, 다리미로 녹여낸 사용된 미화원의 장갑_2023
<태양력에 따른 24절기 해당 날짜 두 수 숫자 중첩 변환 결과>
<오륙삼의 양> 연작 봄 ver 설치 전경, 온드림소사이어티_2023
<오륙삼의 양> 연작 여름 ver 설치 전경, 온드림소사이어티_2023
<오륙삼의 양> 연작 가을 ver 설치 전경, 온드림소사이어티_2023
<오륙삼의 양> 연작 겨울 ver 설치 전경, 온드림소사이어티_2023

<오륙삼의 양> 디테일 영상, 온드림소사이어티_2023

<오륙삼의 양_소한>, 37 x 50(cm), 캔버스에 유채, 홀로그램 글리터, 다리미로 녹여낸 사용된 미화원의 장갑_2023
<오륙삼의 양_대한>, 37 x 50(cm), 캔버스에 유채, 홀로그램 글리터, 다리미로 녹여낸 사용된 미화원의 장갑_2023
<오륙삼의 양_입춘>, 37 x 50(cm), 캔버스에 유채, 홀로그램 글리터, 다리미로 녹여낸 사용된 미화원의 장갑_2023
<오륙삼의 양_우수>, 37 x 50(cm), 캔버스에 유채, 홀로그램 글리터, 다리미로 녹여낸 사용된 미화원의 장갑_2023
<오륙삼의 양_경칩>, 37 x 50(cm), 캔버스에 유채, 홀로그램 글리터, 다리미로 녹여낸 사용된 미화원의 장갑_2023
<오륙삼의 양_춘분>, 37 x 50(cm), 캔버스에 유채, 홀로그램 글리터, 다리미로 녹여낸 사용된 미화원의 장갑_2023
<오륙삼의 양_청명>, 37 x 50(cm), 캔버스에 유채, 홀로그램 글리터, 다리미로 녹여낸 사용된 미화원의 장갑_2023
<오륙삼의 양_곡우>, 37 x 50(cm), 캔버스에 유채, 홀로그램 글리터, 다리미로 녹여낸 사용된 미화원의 장갑_2023
<오륙삼의 양_입하>, 37 x 50(cm), 캔버스에 유채, 홀로그램 글리터, 다리미로 녹여낸 사용된 미화원의 장갑_2023
<오륙삼의 양_소만>, 37 x 50(cm), 캔버스에 유채, 홀로그램 글리터, 다리미로 녹여낸 사용된 미화원의 장갑_2023
<오륙삼의 양_망종>, 37 x 50(cm), 캔버스에 유채, 홀로그램 글리터, 다리미로 녹여낸 사용된 미화원의 장갑_2023
<오륙삼의 양_하지>, 37 x 50(cm), 캔버스에 유채, 홀로그램 글리터, 다리미로 녹여낸 사용된 미화원의 장갑_2023
<오륙삼의 양_소서>, 37 x 50(cm), 캔버스에 유채, 홀로그램 글리터, 다리미로 녹여낸 사용된 미화원의 장갑_2023
<오륙삼의 양_대서>, 37 x 50(cm), 캔버스에 유채, 홀로그램 글리터, 다리미로 녹여낸 사용된 미화원의 장갑_2023
<오륙삼의 양_입추>, 37 x 50(cm), 캔버스에 유채, 홀로그램 글리터, 다리미로 녹여낸 사용된 미화원의 장갑_2023
<오륙삼의 양_처서>, 37 x 50(cm), 캔버스에 유채, 홀로그램 글리터, 다리미로 녹여낸 사용된 미화원의 장갑_2023
<오륙삼의 양_백로>, 37 x 50(cm), 캔버스에 유채, 홀로그램 글리터, 다리미로 녹여낸 사용된 미화원의 장갑_2023
<오륙삼의 양_추분>, 37 x 50(cm), 캔버스에 유채, 홀로그램 글리터, 다리미로 녹여낸 사용된 미화원의 장갑_2023
<오륙삼의 양_한로>, 37 x 50(cm), 캔버스에 유채, 홀로그램 글리터, 다리미로 녹여낸 사용된 미화원의 장갑_2023
<오륙삼의 양_상강>, 37 x 50(cm), 캔버스에 유채, 홀로그램 글리터, 다리미로 녹여낸 사용된 미화원의 장갑_2023
<오륙삼의 양_입동>, 37 x 50(cm), 캔버스에 유채, 홀로그램 글리터, 다리미로 녹여낸 사용된 미화원의 장갑_2023
<오륙삼의 양_소설>, 37 x 50(cm), 캔버스에 유채, 홀로그램 글리터, 다리미로 녹여낸 사용된 미화원의 장갑_2023
<오륙삼의 양_대설>, 37 x 50(cm), 캔버스에 유채, 홀로그램 글리터, 다리미로 녹여낸 사용된 미화원의 장갑_2023
<오륙삼의 양_동지>, 37 x 50(cm), 캔버스에 유채, 홀로그램 글리터, 다리미로 녹여낸 사용된 미화원의 장갑_2023

시간의 비가역성이라는 주제는 <돌아갈 수 없는 지구본>에서 다뤄졌다. 나눔 받은 지구본 위에 본인 자신의 위치인 남한 부분만 글리터로 칠하는 행위를 통해, 한번 지나가면 과거로 갈 수 없는 시간의 물리적 속성과 함께, 인간이 개입되어 변화되는 자연의 가변적 상황을 암시하고자 했다.

 

<돌아갈 수 없는 지구본> 디테일 영상, 온드림소사이어티_2023

<돌아갈 수 없는 지구본>, 당근에서 나눔받은 사용된 지구본, 홀로그램 글리터_2023

<미대칭변초경> 설치 전경 영상, 온드림소사이어티_2023
<습기옥> 설치 전경 영상, 온드림소사이어티_2023
<현철, 복석, 석춘> 설치 전경 영상, 온드림소사이어티_2023
<소각의 하루> 연작 설치 전경 영상, 온드림소사이어티_2023

《563》 전시 전경, 온드림소사이어티_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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