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물

《캔버스와 물감의 관계》

<캔버스와 물감의 관계>(2015-2020) 연작은 캔버스, 물감, 자동 전동 딜도, 피임 용품 등 낯선 오브제들을 결합하여 예술의 본질, 욕망, 새로운 해석의 가능성 등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다. 본인은 캔버스에 자동 전동 딜도를 사용하여 물감을 흩뿌리거나, 콘돔 오브제를 부착하는 등의 양식으로 그림을 제작하는 주체자의 관점에서 벗어나 사물의 능동적 관점을 시각화해 보고 이를 상상하고자 하였다.

 

작품에서 캔버스와 물감은 단순한 지지체와 재료의 역할을 넘어, 상호작용하며 작품을 창조하는 주체로서 기능한다. 본인은 인간의 판단이 아닌 사물의 관점에서 '닿음'이 형상이 되는 과정이라면, 미술 또한 인간의 탄생과 유사하게 형상이 자율적으로 만들어지는 과정일 수 있다는 가설을 설정하였다. 일반적으로 캔버스와 물감은 미술 작품 제작을 위한 인간의 도구로 여겨지지만, 사고를 거꾸로 해보면, 오히려 인간이 캔버스와 물감을 연결하는 매개체 역할을 수행할 수도 있다고 보았다. 인간은 캔버스와 물감이 서로 만나 새로운 형상을 창조하도록 조력하며, 그 과정에서 캔버스와 물감은 스스로의 의지에 따라 작품을 창조하는 주체가 된다. 캔버스 위에 물감이 흘러내리고 번지는 과정에서 예측 불가능한 질감과 형태가 생성되는 것은 인간의 의도적인 개입을 넘어선 재료 자체의 속성이 발현된 결과로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이는 인간이 태어나기 전 특정한 형태가 없는 유동적인 존재, 즉 액체였던 것과 유사하게, 예술 작품 또한 끊임없이 변화하고 해석될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닌다는 본인의 상상력에 기반한다. 따라서 본 연구는 작품으로 완성되기 이전의 여백 상태인 캔버스와 물감 자체도 능동적인 잠재력을 내포할 수 있다는 전제 하에 진행되었다. 캔버스와 물감의 관계를 인간 관계로 확장하여, 예술 창작 과정에서의 주체와 객체 간 복잡한 역학 관계를 탐구하고자 하였다.

 

각 작품에서 콘돔은 다양한 의미를 내포하는 상징물로 활용되었다. 본인은 피임 도구의 사용 여부가 인간의 존재를 결정짓는 것처럼, 예술 또한 보이지 않는 어떤 요인에 의해 그 존재가 규정될 수 있다는 논리를 전개하였다. 콘돔의 '있음'과 '없음'이 생명의 존재 여부를 결정짓듯, 예술 작품 또한 특정한 조건이나 우연성에 의해 존재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이유였다. 즉, 우리가 '미술'이라고 인식하는 것은 어쩌면 드러나지 않은 어떤 '사고'나 '사건'의 결과일 수 있다는 것이다. 콘돔은 생명의 탄생을 막는 도구이자 동시에 욕망과 충동을 통제하는 장치로서, 인간의 존재와 욕망을 규정하는 보이지 않는 질서를 상징한다. 캔버스 위에 부착된 터진 콘돔 이미지는 '미술'이라는 형상이 어떻게 탄생하게 되었는지를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역할을 수행한다. 본 연구는 콘돔을 통해 있음과 없음, 생명과 욕망, 예술의 운명이라는 복잡한 관계를 환기시키고자 하였다.

 

본래 자동 전동 딜도로 기능하던 사물을 실리콘으로 캐스팅하여 물감 모양으로 변형한 것은, 본인의 사물의 관점에 대한 상상을 시각화하기 위한 방법론적 장치이다. 딜도의 형태를 물감으로 변형함으로써 딜도가 지닌 노골적인 성적 의미를 상대적으로 희석하고, 예술적 재료로서의 가능성을 부각하고자 했다. 즉, 본래 욕망의 도구였던 자동 전동 딜도는 이제 예술적 사유를 위한 매개체로 기능하며, 새로운 의미를 획득한다. 이 작품은 무수한 캔버스와 물감 중에서 특정한 '그것'과 '그것'이, 그리고 '나'라는 매개자를 만나 빚어진 우연의 결과일 수 있다. 그렇다면 나는 캔버스와 물감이 인간을 매개하여 자율적으로 만들어낸 형태를 그저 '내 작품'이라는 고정된 인식으로 재단해 왔었을지도 모른다고 고찰해 볼 수 있다. 인연의 인과성은 명확히 규명하기 어려우며, 작품의 진정한 주체가 누구인지에 대한 질문은 이러한 반전된 사고에서 비롯된 것이다. 관람객은 전시장에서 이러한 오브제를 통해 본인의 역전된 시각을 상기하고, 예술의 의미와 가치, 특히 예술 창작 과정에서 주체와 객체의 역할에 대한 기존의 관념을 재고해 볼 수 있다.

 

<캔버스와 물감의 관계_아크릴>, 33 x 46 cm, 블랙캔버스에 피임용 콘돔 오브제, 아크릴, 본드_2019
<캔버스와 물감의 관계_아크릴>, 40 x 53 cm, 블랙캔버스에 피임용 콘돔 오브제, 아크릴, 본드_2019
<캔버스와 물감의 관계_아크릴>, 42 x 30 cm, 블랙캔버스에 피임용 콘돔 오브제, 아크릴, 본드_2019
<캔버스와 물감의 관계_아크릴>, 46 x 33 cm, 블랙캔버스에 피임용 콘돔 오브제, 아크릴, 본드_2019
<캔버스와 물감의 관계_아크릴>, 46 x 53 cm, 블랙캔버스에 피임용 콘돔 오브제, 아크릴, 본드_2019
<캔버스와 물감의 관계_아크릴>, 53 x 46 cm, 블랙캔버스에 피임용 콘돔 오브제, 아크릴, 본드_2019
《캔버스와 물감의 관계》 전시 전경, 플레이스막 인천_2020
《캔버스와 물감의 관계》 전시 전경, 플레이스막 인천_2020
《캔버스와 물감의 관계》 전시 전경, 플레이스막 인천_2020
<캔버스와 물감의 관계_수채> 연작 설치 전경, 플레이스막 인천_2020
<캔버스와 물감의 관계_수채>, 53 x 46 cm, 수채화지에 자동 전동 딜도 분사, 수채_2020
<캔버스와 물감의 관계_수채>, 53 x 46 cm, 수채화지에 자동 전동 딜도 분사, 수채_2020
<캔버스와 물감의 관계_수채>, 53 x 46 cm, 수채화지에 자동 전동 딜도 분사, 수채_2020
<캔버스와 물감의 관계_수채>, 80 x 53 cm, 수채화지에 자동 전동 딜도 분사, 수채_2020
<캔버스와 물감의 관계_수채> 설치 전경, 플레이스막 인천_2020
<캔버스와 물감의 관계_잉크>, 340 x 310 cm, 면천에 자동 전동 딜도 분사, 잉크_2020
《캔버스와 물감의 관계》 전시 전경, 플레이스막 인천_2020
《캔버스와 물감의 관계》 전시 전경, 플레이스막 인천_2020
<가시의 주체를 위한 오브제 설치>, 자동 전동 딜도 장치에 물감통 실리콘 캐스팅_2019
《캔버스와 물감의 관계》 전시 전경, 플레이스막 인천_2020
<가시의 주체를 위한 오브제 설치> 설치 전경, 플레이스막 인천_2019
<캔버스와 물감의 관계_아크릴>, 164 x 464 cm, 면천에 피임용 콘돔 오브제, 아크릴, 본드_2019

<캔버스와 물감의 관계_영상>, 단채널 영상, 00:05:45_2015

<캔버스와 물감의 관계_영상> 설치 전경, 플레이스막 인천_2020
<캔버스와 물감의 관계_유채> 연작 설치 전경, 플레이스 막 인천_2020
<캔버스와 물감의 관계_유채> 연작 설치 전경, 문래틈_2020
<캔버스와 물감의 관계_유채> 디테일 사진, 문래틈_2020

《캔버스와 물감의 관계》 전시 스케치, 플레이스 막 인천_2020

<캔버스와 물감의 관계_수채> 설치 전경, 플레이스막 인천_2020
<캔버스와 물감의 관계_수채> 설치 전경, 플레이스막 인천_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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